사랑할 때 사랑하라
열 손가락이 잘려나가도
손가락 마디 한 마디 남아 있다면
두 팔을 내어주어도
사랑하라, 사랑이
두 눈알을 다 가져가버려도
사랑이 몸뚱이만 남겨놓아도
사랑이 남아 있다면 사랑하라
지구별에 다시 빙하기가 오고
지구가 두꺼운 얼음에 덮여
검독수리가 죽고
향유고래가 죽고
흰 민들레가 죽고
오직 외발 하나 딛고 설 땅이 있다면
사랑하라
그 땅에 한 발 딛고 서서
나머지 한 발 들고 서 있을 수 있다면
사랑하라, 사랑은
용서보다 거룩한 용서
기도보다 절실한 기도
아무것도 가질 수 없고
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도
사랑이 있다면 사랑하라
사랑할 때 사랑하라
- 정일근·시인 -